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삼아 극장가에서 예상외의 흥행을 거두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9시간여 동안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 분) 세력과 수도경비사경관 이태신(정우성 분) 사이에 벌어진 일화들을 담았습니다.
2030 관객의 힘
'서울의 봄'은 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무거운 영화로 예상외의 대흥행을 이루며 12월 5일 기준 5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20·30대 관객들의 입소문이 이 영화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 극장가 비수기에도 흥행하는 것은 예상 밖의 일입니다.
영화는 들뜬 11월의 극장 관객 트렌드에서 벗어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했음에도 20·30대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성공은 영화계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는데 '서울의 봄'의 흥행 성공요인과 영화 속 주인공들에 관한 남은 이야기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서울의 봄'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5070세대보다는 20·30대 관객들이 주도적으로 관람을 하면서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과 정치인들의 무능함과 군 수뇌부의 비열함이 분노를 자아내며 입소문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어둡고 긴장된 분위기를 통해 시대적인 이슈와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여 관심을 모았습니다. 또한,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이해와 함께 12.12가 우리 사회에 끼친 의미를 깨닫고 있으며, 더 깊숙하게는 젊은 세대 자신들이 느끼는 역사에 대한 무지, 반성 등을 더해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후에 12.12 사건에 관한 시대적 이슈를 공부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시대적 관점을 토론하는 등 에듀테인먼트 열풍을 만들고 있으며 극 중 대사와 인물을 활용한 각종 밈도 유행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반응을 통해 '서울의 봄'은 새로운 영화 흥행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관객들의 관심과 이야기를 통해 영화가 지닌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탐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화의 성공은 도식화된 흥행 모델의 파괴와 관객들의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212군사반란사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고 난 후 그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동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세력이 권력을 잡기 위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을 체포한 군사반란사건입니다.
하나회는 박정희대통령의 비호 아래 1963년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김복동 등 대한민국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했던 군대 내의 사조직으로 매 기수 당 10명 이내, 영남 출신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며 200명이 넘는 군대 내 사조직으로 성장하였고 11기 외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점조직으로 만들어졌으며 박정희대통령의 비호 아래 그들은 군부 내에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박대통령 사망 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큰 권력을 쥐게 된 전두환의 안하무인적 태도를 우려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하나회 세력에 대한 인사조치를 계획하자 이를 눈치챈 그들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이후 군 요직과 권력을 이들이 모두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탄생한 제5공화국은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반란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공화국으로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존재했으며,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이 이끌었습니다.
제5공화국은 대통령의 임기를 7년으로 늘리고,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한 단임제를 도입하는 등 헌법 개정을 통해 탄생했는데 국가안전기획부가 야당 참여자를 미리 선별하고 일부 운영비를 보조하는 등 정당정치를 형식화하는 등 사실상의 1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 후 1212군사반란에 가담했던 인물들인 노태우, 노재현, 황영시, 허화평, 허삼수, 유학성, 박희도, 최세창 등등은 일평생 승승장구하면서 잘 먹고 잘살다 갑니다.
1212군사반란사건을 더 알고 싶다면
신군부에 저항했던 인물들의 남은 이야기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분)
1212 군사반란이 신군부의 승리로 돌아가자 그는 보안사의 ‘서빙고실’에서 45일간 혹독한 취조를 받게 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생이었던 아들은 1982년 의문사하게 됩니다. 그 후 정계에 입문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사망하였는데 그가 죽은 2년 후 아내도 아파트에서 몸을 던집니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분)
1212군사반란 뒷날 강재전역을 당한 후 군사법원에서 이등병으로 강등을 당하는 모욕을 당합니다. 이후 5공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서기도 하였으며 군사반란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해 애쓰다 2002년 세상을 떠납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정만식 분)
신군부에 의해 강제전역을 당한 정병주는 그들의 부당함을 계속 부르짖다가 1989년 고양시의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죽음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의문사 한 고인은 동작동현충원에 안정되었습니다. 그의 무덤 묘비명은 백비. 즉, 비석에는 아무 내용이 없이 그냥 이름만 적혀있습니다.
이는 유족들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자녀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그를 끝까지 지키다 사망한 김오랑중령의 묘소에 참배하고 있습니다.
김오랑 소령(정해인 분)
신군부에 맞서 홀로 정병주사령관을 지키던 김오랑소령의 시신은 야산에 묻혀 있다가 동기생들의 지속적인 탄원으로 중령으로 진급하여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비극적인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다 일찍 돌아가시고 그의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던 그의 아내인 백영옥여사는 시력을 잃고 고초를 겪던 중 아파트에서 실족사하게 됩니다.
서울의 봄 관객이 2030 세대를 주를 이룬다고 하여 기쁜 마음에 글을 적으면서 남은 자들을 검색하다 보니 반란군들은 호의호식하고 가족들까지 그 부를 물려받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화가 나는군요. 불의에 맞선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까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말이죠. 참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