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단지 ‘요양보호사로 전직한 박사’의 일기를 담은 기록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사색, 곧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누군가의 기록입니다.
저는 이 여정을 통해 내려놓아야 할 것들과 끝내 지켜내야 할 가치들을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일’이라는 작은 움직임 속에서 조금씩 저의 내면에 쌓이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늙음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품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언젠가는 우리가 모두 마주하게 될 ‘노년기’가 단순한 퇴장이 아닌 또 다른 무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앞으로 요양보호사로서의 경험과 성찰,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나이 듦'은 '약자'가 된다는 것?
나도 드디어 은퇴를 했다.
박사, 교수, 교육원장, 관장…
남들이 보면 ‘많이 누리며 살아온 삶’이라 말할 만한 거창한 직함들을 거쳤다.
그러나 나는 그 직함들이 단지 ‘운이 좋아 얻은 스펙’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모든 이름은, 오랜 시간 교육과 행정, 기획의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궤적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화려한 명함들이 내 어깨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늘 무언가를 준비하고,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으니, 은퇴 후에도 누군가 나를 ‘모셔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중심에 설 수 있으리라는 '무식함'이 나를 지배했는지도 모른다.
은퇴는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신체가 건강하고 정신이 맑은 덕에, 소소한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의 어느 분야든 소속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을 찾았다.
마침 지역 내 기관의 운영자를 채용한다는 공고가 눈에 띄었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공고문이었다.
지역사회에서의 신뢰, 해당 분야의 전문성, 학력, 자격… 나는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
무척 당혹스러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결과를 곱씹던 어느 날,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주변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세가 좀 많으시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아 내 나이가 좀 많구나..."
나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전문성이 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배제될 수 있는가?
사회는 왜 고령자의 능력을 재활용하지 않는가?
노년이 된다는 건, 이토록 무력해지는 일인가?
남들은 관심도 없는데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며 계속 확장시켜 나가는 질문은 당혹감과 씁쓸함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나이 듦'이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편입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뒤늦게야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내가 간과했던 사회의 인식과 편견을 다시 공부하면서 하나둘씩 포기할 것들을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은퇴 전, 여러 개의 자격증을 준비해 두었고, 그중 하나가 사회복지사였다.
(국가자격증 취득이 취미라고 너스레 떨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워크넷 구인공고를 살펴보다 마음을 붙잡는 문장을 발견했다.
'학력, 나이 무관'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냉혹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아… 그 나이면 좀…”
반복되는 실망 속에, 마침내 한 시설에서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컴퓨터만 잘 다루시면 괜찮습니다.”
그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제야 이력서를 펼쳐놓고 자랑스럽게 써두었던 모든 이력을 지웠다.
이제 박사도, 교수도 사라졌다.
단지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간략한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은퇴 후 첫 직장에 출근하게 되었다.
미래의 나를 보다.
근무하게 된 곳은 노인복지시설이었다.
약 40여 명의 어르신들이 매일 등하교하듯 시설을 방문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점심까지 함께하는 공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노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이제는 ‘법적 노인’이라는 나이에 가까워졌지만, 그동안 내가 일하던 환경은 활기차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완전히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다.
출근 첫날,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간에 어르신들의 등 뒤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느릿한 동작, 구부정한 자세, 무표정한 얼굴들…
그 장면은 내게 이상하고 불편한 감정을 안겼다.
'거대한 무덤'
너무 심한 표현 같지만 그 장면을 묘사하는 직관적 느낌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군."
그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늙음에 대한 충격이자 나의 미래를 바라보는 본능이었다.
새로운 이름표 '요양보호사'
나는 은퇴 후 조금 느슨하면서도 의미 있고 재미나는 활동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전일제로, 다시 예전의 치열한 노동현장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설 대표의 업종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표리부동한 언행은 나를 점점 실망하게 만들었다.
그 무렵 함께 일하던 요양보호사들의 모습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들은 어르신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묵묵히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로, 물론 자신들 내부의 갈등도 있었지만 대체로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어느 날, 그들끼리 하는 말을 들었다.
“재가요양보호사는 하루 종일 근무하지 않아도 돼요. 원하는 만큼만 일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마치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상쾌함을 안겨 주었다.
종일 일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생산성 있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니!
어르신들을 좀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정성을 다해 잠깐의 일상을 돌봐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곧장 근처 교육기관에 등록을 하여 마침내 ‘요양보호사’라는 또 다른 국가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내려놓음이 주는 자유
박사 외 누구누구라는 자랑스러운 명함을 모두 내려놓았다.
화려한 경력도, 근사한 직함도 앞으로의 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나는 지금 한 사람의 돌봄 노동자로서,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일에 종사하려 한다.
놀랍게도 이 일은 나의 노년에 또 다른 삶의 역동과 생의 온기를 안겨줄지도 모른다.
비록 짧은 기간에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일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몇 년 후의 나와 닮았을지 모를 그분들이, 내 손길로 인해 잠시나마 위로받고 사람에 대한 따스함을 기억한다면
일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질문거리가 참 많다.
은퇴 후, 우리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경력을 내려놓고 새로운 이름표를 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화려한 경력들이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과거’ 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인정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과거의 이력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던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제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되었다.